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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왕 구천과 와신상담 이야기

by 머니트리001 2025. 8. 7.

춘추전국시대, 강남의 두 나라 오(吳)와 월(越)은 오랜 숙적 관계였다.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참패를 당하고 노예가 된 후, 20년간의 치밀한 복수를 통해 마침내 설욕을 이룬 이야기는 인내와 의지의 상징이 되었다. 굴욕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정신력으로 역사상 가장 극적인 복수극을 완성한 구천의 와신상담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교훈을 주고 있다.

 

월왕 구천이 쓸개 맛을 보는 모습

1. 패배와 굴욕 - 노예가 된 왕

기원전 494년, 부교산(夫椒山) 전투에서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에게 참혹한 패배를 당했다.

월나라 군사들은 거의 전멸했고, 구천은 회계산으로 도망쳐 포위되었다.

신하들은 자결을 권했지만, 구천은 굴욕을 감수하더라도 목숨을 보전해 훗날을 도모하기로 결심했다.

구천은 부차에게 항복하며 자신과 부인을 노예로 바치겠다고 청했다.

처음에는 죽이려던 부차였지만, 신하 백비의 간언에 따라 구천을 살려두고 굴욕을 주기로 했다.

구천 부부는 오나라로 끌려가 말을 기르고 무덤을 지키는 일을 맡게 되었다.

가장 굴욕적인 일은 부차의 배설물을 맛보고 건강상태를 진단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부차가 병에 걸렸을 때, 구천은 주저 없이 그의 똥을 맛보고 "대왕의 병이 곧 나을 것"이라고 했다.

과연 부차의 병이 나았고, 이를 계기로 부차는 구천의 충성심에 감동받아 그를 월나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구천에게는 이 모든 굴욕이 복수를 위한 연기였을 뿐이었다.

2. 와신상담 - 복수를 다짐하다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겉으로는 오나라에 충성하는 속국의 군주 노릇을 했지만, 속으로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그는 굴욕을 잊지 않기 위해 거친 땔감 위에서 잠을 자고(臥薪), 방 안에 쓸개를 매달아 놓고 수시로 핥으며(嘗膽) 그 쓴맛으로 수치를 되새겼다.

구천은 현명한 신하들과 함께 치밀한 복수 계획을 세웠다. 범려는 전략을 담당하고, 문종은 내정을 관리했다.

먼저 국력을 기르기 위해 농업을 장려하고 인구를 늘리는 정책을 폈다.

아이를 낳으면 쌀과 고기를 하사하고, 쌍둥이를 낳으면 더 후한 상을 주었다.

또한 백성들에게 검약을 가르치고, 자신도 거친 옷을 입고 검소하게 살았다.

동시에 오나라의 국력을 약화시키는 공작을 펼쳤다.

오나라에 조공을 바칠 때는 최고급 쌀을 보내되 미리 쪄서 씨가 나지 않게 했고, 목재를 바칠 때는 좀이 먹은 것을 골라 보냈다.

또한 오나라 조정에 간첩을 심어 내부 정보를 수집하고, 부차가 사치와 향락에 빠지도록 유도했다.

이 모든 일을 20년간 끈질기게 계속했다.

3. 절세미녀 서시와 완벽한 복수

복수의 마지막 단계는 절세미녀 서시를 이용한 계략이었다.

범려가 발견한 서시는 "침어낙안(沈魚落雁)"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워서, 물고기도 부끄러워 물 속으로 가라앉고 기러기도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했다.

구천은 3년간 서시를 교육시켜 완벽한 미인계의 도구로 만들었다.

서시가 오나라에 바쳐지자 부차는 완전히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부차는 서시를 위해 화려한 궁전을 짓고, 호화로운 연회를 열며 정사는 뒷전으로 밀어두었다.

충신 오자서가 누차 간언했지만 부차는 듣지 않고 오히려 그를 죽여버렸다.

오나라의 국력은 급격히 쇠퇴했고, 백성들은 사치와 부패에 지쳐갔다.

기원전 473년, 마침내 구천이 대군을 이끌고 오나라를 침공했다.

20년간 준비한 월나라 군대는 강했고, 쇠락한 오나라는 속수무책이었다.

부차는 구천에게 항복을 청했지만, 구천은 냉정하게 거절했다.

"옛날 당신이 나에게 보인 자비를 나도 베풀고 싶지만, 하늘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부차는 자결했고, 오나라는 멸망했다.

구천의 20년 복수가 마침내 완성된 순간이었다.

이후 구천은 중원으로 진출해 춘추오패 중 마지막 패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