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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평원군 조승

by 머니트리001 2025. 8. 5.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의 평원군은 식객 3천 명을 거느린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인재를 귀히 여기고, 위기 속에서도 나라를 구한 결단력 있는 지도자였다.

낭중지추의 고사처럼, 그의 삶은 시대를 꿰뚫는 지혜로 가득했다.

조나라의 평원군

👑 평원군의 출신과 인재 등용

평원군(平原君), 본명 조승(趙勝)은 조나라 무령왕의 아들이자 혜문왕의 동생으로, 왕실 출신의 고귀한 혈통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전국시대의 대표적인 정치가로, 전국사군자(戰國四君子) 중 하나로 꼽힌다.

 

전국사군자는 전국시대 각국에서 뛰어난 정치력과 인재 등용으로 명성을 떨친 네 명의 군자를 말하며, 평원군 외에도 제나라의 맹상군, 초나라의 춘신군, 위나라의 신릉군이 있다.

 

평원군의 가장 큰 특징은 인재를 귀하게 여겼다는 점이다. 그는 무려 3천 명의 식객을 거느렸는데, 이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 식객들 중에는 공손룡, 추연, 모수 등 뛰어난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들은 조나라의 외교, 전략, 내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평원군은 이들을 단순히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정치와 외교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의 인재 등용 철학은 ‘능력 있는 자는 반드시 쓰인다’는 실용주의에 가까웠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가 바로 모수와의 이야기다. 모수가 초나라로 사신을 갈 때 자신도 동행하길 청하자, 평원군은 그의 능력을 의심하며 거절했다.

 

이에 모수는 “저를 오늘 주머니 속에 넣어주십시오. 그럼 끝이 삐져나올 것입니다.”라고 답했고, 이는 바로 고사성어 ‘낭중지추(囊中之錐)’의 유래가 되었다.

주머니 속에 든 송곳은 반드시 그 끝이 드러난다는 뜻으로, 유능한 사람은 어디서든 두각을 나타낸다는 의미다.

 

이처럼 평원군은 인재를 알아보는 눈과 그들을 활용하는 능력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었다. 그의 식객 제도는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조나라의 국력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이었다.

⚔️ 장평 전투와 조나라의 위기

전국시대는 각국이 패권을 다투던 시기로, 조나라는 진나라와의 갈등 속에서 큰 위기를 맞게 된다. 그 중심에는 바로 장평 전투가 있다. 기원전 263년, 조나라는 한나라로부터 상당군을 받아들이며 진나라의 분노를 샀고, 결국 진나라와의 전면전으로 이어졌다. 이 전투는 전국시대 최대 규모의 전투 중 하나로, 조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사건이었다.

 

조나라는 초반에 명장 염파를 장수로 내세워 진나라의 백기와 대치했지만, 조나라 내부에서는 염파의 소극적인 전략에 불만이 커졌다. 결국 조나라 왕은 염파를 해임하고 조괄을 대신 임명했다. 조괄은 공격적인 전략을 펼쳤지만, 진나라의 백기는 이를 역이용해 조나라 군을 포위하고 장기간의 심리전을 펼쳤다. 그 결과, 조나라 군은 식량이 떨어지고 사기가 무너졌으며, 결국 45만 명에 달하는 병사가 항복한 뒤 몰살당했다.

 

이 전투는 조나라의 국력을 크게 약화시켰고, 이후 진나라의 침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조나라의 수도 한단은 진나라에 의해 포위되었고, 나라 전체가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때 평원군은 조나라의 마지막 희망으로 떠오른다. 그는 초나라에 원병을 요청하기 위해 직접 사신단을 이끌고 떠났고, 이 과정에서 모수의 외교적 능력이 빛을 발한다.

 

모수는 초나라 왕을 설득해 조나라를 돕게 만들었고, 이후 위나라의 신릉군도 조나라를 지원하게 된다. 이 연합군은 진나라의 포위를 풀고 조나라를 구해낸다. 평원군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사재를 풀어 백성들을 돕고, 병사들에게 식량을 제공하며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다했다. 그의 결단력과 외교력은 조나라를 멸망의 문턱에서 구해낸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 평원군의 유산과 현대적 의미

평원군은 단순한 정치가가 아니라,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과 인재를 활용하는 능력을 갖춘 지도자였다. 그의 삶은 《사기》 열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오늘날에도 리더십과 인재 등용의 상징으로 회자된다.

 

특히 ‘낭중지추’라는 고사성어는 그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표현이다. 유능한 사람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으며, 그들을 알아보고 기회를 주는 것이 진정한 리더의 역할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평원군의 식객 제도는 현대의 네트워크와 인재풀 개념과도 닮아 있다. 그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자신의 주변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그들의 능력을 활용했다. 이는 오늘날 기업이나 조직에서 인재를 확보하고, 그들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그의 외교적 능력도 주목할 만하다. 위기 속에서 초나라와 위나라를 설득해 조나라를 구한 것은 단순한 정치적 수완이 아니라, 신뢰와 인맥, 그리고 전략적 사고가 결합된 결과였다. 이는 오늘날 국제 관계나 협상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평원군은 위기 속에서 백성을 먼저 생각한 지도자였다. 자신의 재산을 풀어 백성들을 돕고, 병사들에게 식량을 제공한 그의 행동은 단순한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인간적인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단순한 권력자가 아니라, 진정한 군자(君子)로 평가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