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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 춘신군(春申君) 황헐(黃歇)

by 머니트리001 2025. 7. 27.

춘신군(春申君)은 전국시대 말기 초나라의 재상으로, 제나라 맹상군, 조나라 평원군, 위나라 신릉군과 더불어 '전국 사군자'로 불린 인물입니다. 그는 비록 왕족 출신은 아니었으나, 뛰어난 외교적 수완과 정치적 감각으로 기울어가던 초나라의 국세를 다시 일으키려 노력했으며, 수많은 식객을 거느려 당대의 명성을 떨쳤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년은 비극적인 사건들로 얼룩지며 혼란했던 전국시대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춘추전국시대

뛰어난 외교관에서 초나라의 재상으로: 입신양명과 권력의 시작

춘신군 황헐은 초나라의 공자(公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뛰어난 재능은 일찍이 빛을 발했습니다. 그는 초나라 경양왕(頃襄王)을 모시며 박사(博士)라는 학자 직책에 있었는데, 당시 초나라는 강성한 진나라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진나라의 소양왕(昭襄王)은 여러 차례 초나라를 침공하여 영토를 빼앗았고, 급기야 초나라 왕을 인질로 잡으려는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이때 황헐은 위태로운 초나라의 상황을 타개하고자 진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는 진나라의 소양왕 앞에서 뛰어난 변론술을 발휘하여 초나라와 진나라가 서로 동맹을 맺어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득했습니다. "진나라와 초나라는 천하를 다투는 두 개의 강국입니다. 만일 초나라가 멸망한다면, 진나라는 초나라를 멸망시킨 나라라는 오명을 쓰게 될 것이고, 다른 나라들은 진나라의 위협을 피해 연합하여 진나라를 공격할 것입니다. 반면, 진나라와 초나라가 동맹을 맺는다면, 두 나라는 서로의 힘을 합쳐 천하의 패권을 다툴 수 있습니다." 황헐의 설득은 소양왕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진나라는 초나라와의 화친을 결정했습니다.

초나라로 돌아온 황헐은 경양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고열왕(考烈王)의 신임을 얻게 되었습니다. 고열왕은 황헐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그를 영윤(令尹, 초나라의 재상)에 임명하고, 회수(淮水) 북쪽의 12현(縣)을 봉지로 하사하며 '춘신군'이라는 작위를 내렸습니다. 이후 춘신군은 초나라의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며 초나라의 국정을 총괄하게 됩니다. 그는 전국시대의 다른 사군자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식객(食客)을 거느렸는데, 그 수가 수천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춘신군은 이들 식객을 통해 정보를 얻고,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으며, 초나라의 국력을 키우는 데 힘썼습니다.

춘신군의 정치적 활동과 한계: 부국강병과 합종책의 실패

춘신군이 재상으로 있던 시기는 초나라의 쇠퇴가 가속화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부국강병(富國强兵)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는 군사력을 강화하고, 농업을 장려하여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노력했습니다. 또한, 그는 여러 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개선하고,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한 합종책(合從策)을 주도했습니다.

춘신군은 기원전 241년, 초나라를 중심으로 한, 한(韓)·위(魏)·조(趙)·연(燕) 5개국의 연합군을 이끌고 진나라를 공격했습니다. 초나라의 수도인 진(陳)에서 출발한 연합군은 진나라의 관문을 공격했지만, 진나라의 방어는 견고했고, 연합군은 결국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해산해야 했습니다. 이 연합군 공격의 실패는 춘신군의 정치적 위상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초나라의 국력은 더욱 기울게 되었습니다.

이후 춘신군은 초나라의 수도를 진(陳)에서 수춘(壽春)으로 천도했습니다. 이는 진나라의 침략으로부터 수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동시에 초나라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춘신군은 여전히 초나라의 최고 권력자였지만, 그의 권력은 예전만 못했으며, 고열왕과의 관계도 소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합종책을 통해 진나라의 팽창을 막고자 했지만, 이미 기울어가던 초나라의 국력을 혼자 힘으로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의 노력은 당장의 멸망을 늦추었을 뿐, 초나라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권력욕과 비극적인 최후: 전국시대 사군자의 몰락

춘신군은 부국강병과 합종책을 통해 초나라의 국력을 회복시키고자 했지만, 그의 말년은 비극적인 사건들로 얼룩졌습니다. 그는 초 고열왕에게 아들이 없자, 자신의 후사를 잇게 할 목적으로 이원(李園)이라는 인물의 여동생을 왕에게 바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원은 자신의 여동생이 먼저 춘신군과 관계를 맺게 하고, 임신한 상태에서 왕에게 바치게 했습니다. 이 여동생이 낳은 아들은 결국 초나라의 태자(太子)가 되었고, 이원은 자신의 여동생이 낳은 아들이 왕위에 오르면 자신에게 위협이 될 춘신군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춘신군의 식객 중에는 '주영(朱英)'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춘신군에게 이원의 음모를 경고하며, "이원은 왕의 뒤를 이어 태자가 왕위에 오르면 반드시 당신을 죽일 것입니다. 그가 아직 세력을 얻기 전에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나 춘신군은 주영의 조언을 무시했습니다. 그는 이원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고, 이원의 음모를 가볍게 여겼습니다.

고열왕이 죽자, 이원은 즉시 사람을 시켜 춘신군을 공격했습니다. 춘신군은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고열왕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이원이 보낸 자객들에 의해 암살당했습니다. 그의 시신은 토막이 났고, 그의 가족들까지 모두 죽임을 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이로써 초나라의 최고 권력자였던 춘신군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고, 초나라는 춘신군의 죽음 이후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춘신군의 비극적인 최후는 혼란했던 전국시대 말기에 권력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초나라는 진나라의 침략을 막아낼 힘을 완전히 잃고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