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42

은나라의 절세미녀 '달기' 중국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고 매혹적인 인물 중 한 명인 달기는 은나라의 마지막 왕 주왕의 총비였습니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로 주왕을 사로잡아 국정을 농단하고 잔혹한 행위를 일삼아 결국 은나라 멸망의 원흉으로 지목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평가는 단순한 악녀를 넘어, 승자의 역사에 의해 희생된 인물이라는 복합적인 시각도 존재합니다. 1. 달기의 등장과 주왕의 몰락달기는 은나라 말기 유소씨(有蘇氏)의 딸로, 주왕이 유소국을 정벌한 후 전리품으로 바쳐진 미녀였습니다. 『사기(史記)』를 비롯한 여러 역사서에 따르면, 주왕은 달기의 미색에 완전히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고 밤낮으로 연회를 베풀며 쾌락에 탐닉했습니다. 달기는 주왕의 총애를 등에 업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시작했으며, 주왕은 달기의 말이라면 무.. 2025. 7. 16.
춘추전국시대 오자서에 대해서 오자서(伍子胥)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말기 초나라 출신의 뛰어난 전략가이자 정치가입니다. 가족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자 복수를 위해 오나라로 망명하여 합려(闔閭)를 도와 오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고, 마침내 초나라를 함락시키는 데 성공하며 극적인 복수를 이뤄냈습니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중국 역사상 가장 극적인 복수 이야기이자, 충절과 비극의 상징으로 남아있습니다. 오자서의 비극적인 서막: 가족의 몰살과 망명길오자서의 비극은 초나라 평왕(平王) 2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오자서의 아버지 오사(伍奢)는 초 평왕의 태자 건(建)의 태부(太傅)였고, 오자서의 형인 오상(伍尚)은 초나라 대부였습니다. 당시 초 평왕은 재위 초기 간신인 비무기(費無忌)를 총애했습니다. 비무기는 평왕이 태자 건을 위해 진나라에서 데려온 며.. 2025. 7. 15.
만리장성과 진나라의 붕괴 만리장성은 고대 중국의 군사 방어 시설이자, 진시황제의 강력한 통치와 진나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거대한 건축물입니다. 그러나 이 웅장한 건축 프로젝트는 한편으로 백성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지웠고, 가혹한 통치 방식과 맞물려 진나라 붕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습니다. 만리장성 건설에 얽힌 진나라의 흥망성쇠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조명해 봅니다. 만리장성의 기원과 진시황제의 역할만리장성은 단일 시대에 갑자기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 기원은 기원전 7세기, 춘추전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각 제후국들은 외부의 침입을 막고 자신들의 영토를 방어하기 위해 국경을 따라 성벽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초나라, 위나라, 조나라, 연나라, 제나라 등 여러 나라가 독자적으로 성벽을 건설했으며, 이들은 주로 북방.. 2025. 7. 15.
춘추전국시대의 소진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년~기원전 221년)는 제후국 간의 치열한 패권 다툼 속에서 책사들이 두각을 나타낸 시기였다. 소진(蘇秦, 기원전 380년경~기원전 284년경)은 전국시대 합종(合從) 전략의 대가로, 여섯 제후국을 연합해 진(秦)나라의 팽창을 저지하려 했다. 그는 뛰어난 언변과 외교술로 전국칠웅의 정세를 뒤흔들며, 약소국들의 생존을 모색했다. 소진의 합종책은 진나라의 연횡(連衡)에 맞선 대표적 외교 전략으로, 그의 삶은 전국시대의 혼란과 책략을 상징한다. 이 글에서는 소진의 초기 생애와 등용, 합종 전략의 전개, 그리고 그의 한계와 유산을 세 가지로 살펴본다. 1. 소진의 초기 생애와 등용소진(蘇秦)은 전국시대 낙양(현재 허난성) 출신으로, 기원전 380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가난.. 2025. 7. 13.
춘추전국시대의 관중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년~기원전 221년)는 제후국들의 패권 다툼 속에서 인재들이 두각을 나타낸 시기였다. 관중(管仲, 기원전 720년경~기원전 645년)은 제(齊)나라 환공을 춘추오패의 선두로 이끈 전략가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가난한 출신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지혜로 제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관중의 개혁은 경제, 군사, 외교를 아우르며 제나라를 중원의 패자로 우뚝 세웠다. 그의 사상은 법가의 기초를 닦았으며,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글에서는 관중의 초기 생애와 등용, 제나라 개혁, 그리고 그의 한계와 유산으로 살펴본다. 1. 관중의 초기 생애와 등용관중(管仲, 본명 이오, 夷吾)은 춘추시대 제나라 출신의 정치가로, 기원전 720년경 영릉(현재 산둥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난한 가문 출신으.. 2025. 7. 13.
전국시대 초양왕 전국시대(기원전 476년~기원전 221년)는 제후국들이 패권을 다투던 혼란의 시기였다. 초(楚)나라의 초양왕(楚襄王, 재위 기원전 298년~기원전 263년)은 초회왕의 아들로, 진나라의 포로로 잡혀 있던 아버지의 사망 후 왕위에 올랐다. 그는 초나라의 쇠퇴를 막기 위해 외교와 군사 전략을 활용했으나, 진나라의 강력한 공세 앞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초양왕의 통치는 초나라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결국 진나라에 의해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 글에서는 초양왕의 즉위와 초기 통치, 군사적·외교적 노력, 그리고 그의 한계와 유산을 세 가지로 살펴본다. 1. 초양왕의 즉위와 초기 통치초양왕(楚襄王, 본명 웅횡, 熊橫)은 전국시대 초나라의 제38대 군주로, 기원전 298년에 아버지 초회왕이 진나라에서 포로로.. 2025. 7. 12.